개요
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남한의 사회교란 목적으로 무장간첩선을 침투시켜왔다. 초기에는 10톤급 내외의 선박을 적접지역 근해를 중심으로 침투시켰으나, 1960년대 말부터 40~50톤급으로 대형화되고 속력도 35노트 이상으로 향상시키면서 중무장화하여 침투해왔다. 우리 해군은 이를 격멸할 수 있는 해상방어체계 수립과 경계태세를 강화하여 적 간첩선을 나포·격침시키는 대간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.
1950년대
- 북한은 1958. 7.10. 속초 동북방 34마일 해상에 무장간첩선 침투를 시작으로 50년대 말에만 총 6회에 걸친 침투를 감행하였다.
- 당시에는 10톤급 내외의 범선(12노트)을 공작선으로 이용하여 북위 38° 근해의 동·서 측방 해안에 주로 침투하였으며, 50년대의 해상 대 간첩작전 중 1958. 9. 8. 울릉도 서방 13마일 해상에 침투한 무장간첩선 격파 작전 시 적 함정과의 교전 중 전하강 일병이 전사했다. (추서 진급, 충무무공훈장 수여)
<임진함(PF-66)이 나포한 간첩선(’58. 7.10.)>
<옹도 근해에서 한산함(PCEC-53)이 나포한 간첩선(’59. 7.19.)>
1960년대
- 1960년대 들어 북한은 대남 무력통일을 위한 기반 및 사회적 혼란가중 목적으로 1960. 7.18. 동해 장기갑 근해 무장 간첩선 침투 등 총 24회 침투를 감행하였다. 이에 해군은 대간첩작전을 중요한 작전으로 인식하여 경기함(DE-71) 등 가용전력을 동원, 해상 경계와 대간첩작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.
- 60년대의 해상 대간첩작전 중 1969. 2.25. 서해 연평도 서방 해상에 침투한 무장간첩선 격파 작전 시 적 함정과의 교전 중 정익창 준위, 이종만 상병이 전사했다.(추서 진급, 충무/화랑무공훈장 수여)
<장기갑 근해에서 경기함(DE-71)이 나포한 간첩선(’60. 7.19.)>
<울산만 근해에서 대동함(PF-63)이 나포한 간첩선(’62. 3.29.)>
<울릉도 근해에서 충무함(DD-91)이 격침시킨 간첩선에서 노획한 고무보트(’66.10.10.)>
1970년대
- 197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은 60톤급(40노트)의 저인망형 철선을 건조 하여 내해성 및 기동성을 향상시켜 1970. 4. 3. 격렬비열도 근해에 간첩 선을 침투시키는 등 총 23건의 해상침투를 감행하였다.
- 70년대의 해상 대간첩작전 중 1975. 9.13. 동해 감포 북방 두완리 해안에 침투한 무장간첩 및 간첩선 탐색작전 시 손정환, 손태환 중사 (추서 진급)와 한상기 병장(추서 진급)이, 1978. 4.28. 고흥반도 남방해안 (거문도 근해)에 침투한 무장간첩선 격침작전 시 적 함정과의 교전 중
제비 75호정 강종철 중사(추서 진급, 충무무공훈장 수여)가 전사했다.
<서해 군자만 근해에서 나포한 간첩선(’70. 6.29.)>
<서해 어청도 해상에서 나포한 간첩선(’74. 7.20.)>
<거진 동북방 해상에서 벽파함(PCE-57)이 격침시킨 간첩선(’75. 2.15.)>
<거문도 근해에서 격침시킨 간첩선(’78. 4.28.)>
1980년대
- 198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은 해상침투 전술을 대폭 수정하여 공작 모선을 70톤급으로 더욱 대형화하고 공작자선도 5톤급(50노트) 철제 반잠수정으로 침투하였다.
- 1980. 3.25. 구룡포 근해에 간첩선을 침투하는 등 총 7건의 해상침투를 감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적 함정과의 교전 중 제비 59호정의 이 양 중사가 전사하였다.(추서 진급, 충무무공훈장 수여)
<서해 격렬비열도 근해에서 격침시킨 간첩선의 인양장면(격침 : ’80. 6.21., 인양 : ’80. 7. 3.)>
<부산 다대포 근해에서 격침시킨 간첩선(’84. 8.30.)>
<부산 청사포 근해에서 격침시킨 간첩선의 노획물 (’85.10.20.)>